하나하나의 이야기
일산명월관요정의 밥상은 전복죽으로 시작이다.
떴는데 손이 멈췄다. 이게 죽이야? 전복 향이 입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참기름 한 방울이 표면에서 반짝거렸다. 죽 하나에 이 정성이면 뒤에 나올 것들은 뭐란 말인가. 불안해졌다. 좋은 의미로.
모듬전. 호박, 생선, 고기. 집어 먹었다. 이상했다. 기름에 튀긴 건데 입이 안 텁텁했다. 비밀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참았다. 초장에 찍어서 한 입. 아, 됐다. 말이 필요 없다.
그때 한우가 나왔다.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형이 숟갈을 내려놓았다. 마블링이 그냥 미쳤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이미 맛이 느껴졌다. 한 점 집어서 소금에 톡. 입에 넣었다. 씹으려고 했는데 씹을 게 없었다. 혀 위에서 녹아버렸다. 형이 나를 봤다. 나도 형을 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할 필요가 없었다.
해물탕 뚜껑을 열었을 때 김이 얼굴을 때렸다. 새우가 붉게 웅크리고 있고, 낙지 다리가 국물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국물 한 숟갈. 시원한 게 먼저 오고, 칼칼한 게 뒤따라왔다. 소주를 안 따를 수가 없었다. 이 조합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좀 안타까웠다.
나물이 다섯 가지 나왔는데, 솔직히 나물을 우습게 봤다. 반성한다. 시금치는 들깨 향이 고소하게 올라왔고, 도라지는 혀끝이 살짝 쌉쌀했고, 콩나물은 물고 뜯을 때 아삭 소리가 났다. 양념이 전부 달랐다. 이걸 각각 따로 무친 거다. 반찬 하나에도 손이 간다는 게, 먹어보면 안다.
잡채는 당면이 안 불었다. 나올 타이밍을 계산한 거다. 갈비찜은 젓가락 대자마자 뼈에서 살이 떨어졌다. 몇 시간을 졸인 건지. 된장찌개 한 숟갈에 "아, 이건 집된장이다" 바로 알았다. 그 텁텁하면서 깊은 맛. 마트 된장으로는 절대 안 나오는 맛이다.
그쯤 되니까 세는 걸 포기했다. 계속 왔다. 나중에 억지로 세봤다. 열다섯. 진짜 열다섯이었다.
마지막에 식혜가 나왔다. 차갑고 달았다. 그걸 마시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이런 밥상을 매일 받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이런 데를 와야 하는 거다. 안 오면 인생에서 뭔가를 놓치고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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