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가 아닌, 살아있는 소리
일산명월관요정에 앉아 있었다. 음악이 들렸다. 어디서 나오는지 몰랐다. 스피커인가 했다.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었다.
한복을 입은 여자분이 가야금 앞에 앉아 있었다. 등이 곧았다. 손가락이 줄 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움직였다.
쟁 — 쟁 —
소리가 방 안을 때렸다. 때렸다는 표현이 맞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받는 느낌이었다. TV에서 가야금 소리 백 번은 들었을 거다. 그건 그냥 배경음이었다. 여기서 듣는 건 달랐다. 줄 하나가 울릴 때마다 공기가 흔들렸다. 진짜로. 앞에 놓인 소주잔 수면이 떨리는 게 보였다.
세 곡째쯤에 아리랑이 나왔다. 아리랑은 솔직히 별로였다. 학교 졸업식, 체육대회, 지겹도록 들은 노래. 근데 여기서 나오는 아리랑은 그 아리랑이 아니었다. 느렸다. 한 음이 끝나기 전에 다음 음이 스며들었다. 가슴 어딘가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는데, 뭉클해졌다.
곡이 끝나면 박수를 친다. 연주자가 살짝 고개를 숙인다. 그 찰나가 좋았다. 내가 박수를 치고, 그 사람이 받아들이고. 스피커에서는 절대 생기지 않는 일이다.
"혹시 다른 곡도 되나요?" 물어봤더니 된단다. 국악 안에서면 뭐든. 트로트는 안 된다. 당연히 안 되지. 그걸 왜 물어봐.
가야금만 있는 줄 알았다. 날에 따라 대금이 나올 때도 있고, 해금이 올 때도 있다고 했다. 대금. 대나무로 만든 피리. 그 소리가 이 공간에서 울리면 어떨까.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다음엔 대금 나오는 날 맞춰서 갈 거다.
콘서트홀 가봤자 의자 딱딱하고 기침도 못 한다. 여기선 밥 먹으면서, 술 마시면서, 편하게 앉아서 듣는다. 이게 진짜 음악 듣는 거다. 솔직히 말할게. 이 집의 진짜 무기는 음식이 아니다. 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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